Cravate라는 명칭은 프랑스어에서 기인한 것으로, 그 시작은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프랑스를 주축으로 한 동맹군은 오스만제국에게 승리한 후 자축을 위해 최정예 병사를 파리에 파견합니다. 당시는 루이 14세의 통치기였습니다. 당시 루이 14세는 크로아티아인들이 화려한 스카프와 같은 천(당시는 린넨 혹은 실크로 만들어졌었다고 합니다.)으로 된 것을 목에 감고 있는 것을 보고 이에 매료됩니다. 이는 크로티아 용병의 부인이나 애인이 무사기원을 담아 목에 걸어준 것이라고 합니다. Cravate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시종은 Croate라고 대답합니다. 루이 14세는 이 Croate를 왕실기장으로 삼고 Croate를 착용한 친위대를 창설합니다. 이후 최고 권력자인 왕이 애용하자 귀족들 사이에 크게 유행하게 됩니다. 후에 크로아티아인을 의미하던 Croate에서 Cravate라는 명칭으로 바뀌게 됩니다.
당시에는 풍성하게 맬수록 멋있다고 생각해 시간이 갈수록 두껍게 감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 Cravate는 태생적 신분을 상징하며, Cravate를 착용했다는 것은 모든 것을 대신해 줄 시종이 있으며 바삐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고 합니다. 허나 귀족의 상징이던 Cravate는 프랑스 혁명 이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사족을 달자면 반다나라던가 스카프를 홀더와 함께 착용하는 것은 이 Cravate에서 떨어져 나온 문화입니다.)
<Ascot Tie>
<Bow Tie>
넥타이는 이런 Cravate가 영국으로 건너가 탄생하게 됩니다. 풍성함과 화려함의 상징이었던 Cravate를 변형하여 심플함과 가벼운 멋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남성들은 더 쉽고 편안하게 착용할 수 있는 Neckwear를 찾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Bow Tie와 Ascot이 탄생하게 되며, 특히 Ascot이라는 것은 현대의 Tie와 과거의 Cravate의 중간적 디자인을 띄며 어떻게 Cravate에서 현대의 Tie로 변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넥타이는 현재의 외형과 비슷한 모양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질은 형편없었습니다. 실크나 면으로 만든 홑띠 형식이여서 단단히 매지 않으면 풀리는 경우가 잦았으며, 풀기도 힘들어 애써 힘을 주어 풀게 되면 형체가 무너져 구겨지거나 찢기는 경우가 잦았다고 합니다.(실제로 제가 갖고 있던 20년대의 Tie는 3번 매고나니 찢어져 버렸습니다. 노후화 때문인줄 알았으나, 생각해보니 이런 점도 없지않아 있을 것 같습니다.)
이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넥타이는 현재의 외형과 비슷한 모양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질은 형편없었습니다. 실크나 면으로 만든 홑띠 형식이여서 단단히 매지 않으면 풀리는 경우가 잦았으며, 풀기도 힘들어 애써 힘을 주어 풀게 되면 형체가 무너져 구겨지거나 찢기는 경우가 잦았다고 합니다.(실제로 제가 갖고 있던 20년대의 Tie는 3번 매고나니 찢어져 버렸습니다. 노후화 때문인줄 알았으나, 생각해보니 이런 점도 없지않아 있을 것 같습니다.)
<특허번호 US2304935 A, Langsdof Jesse E>
1920년 중반, 뉴욕의 타이 메이커 Jesse Langsdorf는 해결책을 찾아냅니다. 그들은 3개의 Segment로 나누어 봉합하고 직물을 대각선으로 재단하여 사용하여 탄력성을 높입니다. 이후로 구겨지거나 찢기는 일이 줄어들게 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Langsdorf가 고안한 방법으로 만들어진 타이를 착용하게 됩니다.
<배경이 별로여서 올리지 않으려다..소장 중인 타이입니다.>
그 당시에는 편물을 짜는 기계도 안감 없이 한장의 천을 통해 전체적으로 얇고 가볍게 만들었습니다. 현대의 타이와는 다르게 심지도 존재하지 않으며 타이의 끝 부분에는 봉제를 하지 않아 하나로 연결되는 느낌으로 제작이 되어 Cravate의 영향이 많이 남아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뒷 부분의 마감도 현재와는 다른 차이를 보입니다. 현대의 것이 1자로 일정하게 봉합이 되어 있다면(slip stitch라는 것으로 개발은 20년대에 되었다고 합니다. 안감과 심지를 보호하기 위한 박음질 방법으로 알고 있으나, 대부분의 30~40년대 Tie에는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특허 때문에 그런 것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차후 알게 된다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30~40년대의 타이는 뒷 부분이 동그스름한 모형으로 마감이 되어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는 소검과 대검 모두 동일하며, 모형이 좌우대칭인 것에 비해 과거에는 비대칭인 타이가 많았습니다. (10~20년대의 타이는 뒷 부분의 마감이 되어있지 않고 현재의 타이 모양만 천에서 오려 사용된 것도 존재합니다.)
아래는 30년대의 타이 광고입니다. 다양한 소재와 디자인이 사용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타이를 보면 사선 스트라이프 패턴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영국에서 시작된 패턴입니다. 연방국가에서 제휴나 연대, 유대감을 표현하기 위한 의미로 제작된 것으로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향하게 됩니다. 후에 이것을 차용, 미국의 Brooks Brothers는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향하는 사선 스트라이프 패턴을 사용하여 타이를 제작합니다.
40년대까지는 넓지 않은 폭의 타이(4.5인치)가 사용되다가 1944년을 기점으로 51년까지는 넓은 폭의 타이(5인치)가 유행하게 됩니다. 이것은 아무래도 전쟁을 끝내고 쉬고 싶은 열망, 그리고 종전 이후에는 끝났다는 안도감과 평화가 반영된 Trend가 아닐까 생각됩니다.(미국에서는 Bold look이라고 표현을 하더군요.) 51년 이후부터는 수트의 트렌드가 변화합니다.(Esquire에서는 이를 Mister T-look이라고 잡지에서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특징으로는 Tapered suit와 슬림한 라펠, 그리고 좁은 챙의 모자를 썼었습니다. 당시 수트의 특징이나 시기를 고려할 때 Rockabilly의 시기에 입었던 수트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타이도 3인치로 슬림해집니다. 이러한 유행은 53년부터 60년대 중반까지 지속됩니다.(시대의 흐름을 보았을 때 Rockabilly의 시기와도 일치하네요.) 그리고 그 60년대 초반에는 1인치까지 슬림해지게 됩니다.(이건 이후의 문화인 모즈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애초에 30년대만 적으려 한 것인데 적다보니 20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 공부하게 되었네요. 다음에는 Braces(미국식 Suspenders)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타이를 보면 사선 스트라이프 패턴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영국에서 시작된 패턴입니다. 연방국가에서 제휴나 연대, 유대감을 표현하기 위한 의미로 제작된 것으로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향하게 됩니다. 후에 이것을 차용, 미국의 Brooks Brothers는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향하는 사선 스트라이프 패턴을 사용하여 타이를 제작합니다.
40년대까지는 넓지 않은 폭의 타이(4.5인치)가 사용되다가 1944년을 기점으로 51년까지는 넓은 폭의 타이(5인치)가 유행하게 됩니다. 이것은 아무래도 전쟁을 끝내고 쉬고 싶은 열망, 그리고 종전 이후에는 끝났다는 안도감과 평화가 반영된 Trend가 아닐까 생각됩니다.(미국에서는 Bold look이라고 표현을 하더군요.) 51년 이후부터는 수트의 트렌드가 변화합니다.(Esquire에서는 이를 Mister T-look이라고 잡지에서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특징으로는 Tapered suit와 슬림한 라펠, 그리고 좁은 챙의 모자를 썼었습니다. 당시 수트의 특징이나 시기를 고려할 때 Rockabilly의 시기에 입었던 수트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타이도 3인치로 슬림해집니다. 이러한 유행은 53년부터 60년대 중반까지 지속됩니다.(시대의 흐름을 보았을 때 Rockabilly의 시기와도 일치하네요.) 그리고 그 60년대 초반에는 1인치까지 슬림해지게 됩니다.(이건 이후의 문화인 모즈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애초에 30년대만 적으려 한 것인데 적다보니 20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 공부하게 되었네요. 다음에는 Braces(미국식 Suspenders)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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