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10일 일요일

Boutonnier

 안녕하세요, 취미로 공부하는 빈티지이고 본업이 있다보니 자주 적는 것은 한계가 있네요.
(사실 요즘 빈티지 서적 읽는 재미에 빠져 블로그를 살짝 등한시 했습니다...)

 오늘은 Boutonnier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Boutonnier라는 것은 본래 단추구멍(Buttonhole)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의 어원에서 기인합니다. 이것이 변화하여 라펠의 단추구멍에 꽂는 장식 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변화한 것 같습니다.

 관련된 어원으로는 Tussie mussie라는 것이 있습니다.(Posy와 Nosegay도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데 위의 두 단어는 중세시대부터 사용되던 것입니다.) 이것은 여성을 위한 의미가 더 강한 것으로 과거 Victorian 여왕(1837~1901) 시대에서 온 어원입니다. 당시에는 한 다발의 꽃(부케)이 악세서리의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꽃말에 대한 의미도 포함되어 상대방에게 메세지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이 어원 또한 후에 Boutonnier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게 됩니다.

  boutonniere의 기원 중세 유럽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결혼을 신청할 때 꽃다발을 내밀고, 그 여성이 마음에 든 경우에 꽃 한 송이를 남성의 가슴에 꽂아주던 관습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현대 결혼식에서 신랑이 가슴의 옷깃에 꽃을 꽂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결혼식에서 사용하는 Boutonniere는 예나 지금이나 신랑이 착용하는 연미복에 맞추어 흰색 카네이션과 하얀 장미가 사용되지만, 옛날에는 작은 파티나 데이트 등 평상시 외출할 때에도 정장과 타이의 색감에 맞추어 가슴에 착용했다고 합니다.




 위의 이미지 모두 1930's의 할리우드 배우입니다. 역시 레전드 급 명배우라 그런지 가슴에 꽂은 꽃이 우아하고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사족이지만, 한국의 블로그나 잡지 등 다양한 글들을 보면 부토니에와 타이, 행거치프를 모두 매치하는 것은 과한 것으로 클래식하지 못하니 피해야 한다는 글들을 자주 보았는데, 과거의 헐리우드 배우나 그 유명한 윈저공을 봐도 모두 다 착용한 사진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 클래식하지 못하다는 말은 어디서 온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 Boutonniere의 단점은 아침에 꽂은 꽃이 저녁에는 시들어버리는 일이 잦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꽃을 시들지 않게 하기 위해 꽃 홀더(Flower holder, Tussie mussie vase, Boutonniere vase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라는 것이 탄생했습니다. 이것은 라펠의 단추 구멍에 집어 넣도록 만들어져 약간의 물을 넣거나 물을 적신 거즈나 티슈로 꽃의 줄기를 감싸 넣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Gold, Silver, Bronze, Brass 등 다양한 소재가 사용되었지만 Silver가 대부분입니다.




 이 외에도 뒷면에 핀이 붙어 직접 재킷에 꽃는 타입도 존재했습니다. 처음에는 꽃을 오랫동안 유지하려는 기능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외형의 우아한 장식이 인상적입니다.




 Agatha Christie 원작의 해외드라마 Poirot을 보면 David Suchet이 연기한 Poirot은 매 회마다 Classic한 Boutonniere를 착용하고 나와 우아한 멋을 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대에도 Boutonniere는 클래식하고 멋진 단어로 사용되지만 실제로 그 제품이 클래식한가라고 물어 본다면 개인적으로는 회의적 입니다. 휴대성에 치중한 것도 그렇고, 본래의 클래식한 색은 바래고 편리함만이 남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2014년 7월 30일 수요일

Braces(Suspenders)





오늘은 영국에서는 Braces, 미국에서는 Suspenders라고 부르는 Braces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 Braces의 시작은 현재도 존재하는 영국의 브랜드, Alvert Thurston에 의해 1820년에 만들어 집니다. 1851년에는 국가에서 개최하는 전시회(박람회 비슷한 것인가 봅니다.)에서 훌륭한 품질로 인해 Honourable Mention(한국어로 번역하기가 뭐해 원문 그대로 적습니다.)을 받았다고 합니다.



 현대에 있어서는 이 Braces를 사용해 바지를 입는다는 것은 흔하지 않은 과거의 것으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굳이 입는 사람들을 꼽자면 국내에서는 소위 아메카지라고 부르는 장르의 1940년대 이전 레플리카 제품을 입는 분들(국내는 주로 워크웨어를 입는 분이 많더군요.)이거나 소위 백갤러라고 부르는 현대식 수트를 입는 분들 중 일부일 것입니다.(클립형 Braces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 Braces라고 하는 것의 역할은 말 그대로 바지를 고정시켜주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벨트라는 것은 존재했지만, 이 Braces라는 것이 좀 더 남성미를 부각시켜주고 고급스럽다고 생각을 했는지 Belt보다 더 애용됩니다. Belt는 사이즈가 조금이라도 크면 바지의 모양새를 무너뜨리는데 Braces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애용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과거에는 현재처럼 사이즈가 다양하지도, 다양하더라도 일부 상류층을 제외하고서는 맞춤식의 옷을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과거에는 하이 웨이스트 팬츠가 유행했는데, 벨트로는 고정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군에서 유니폼에 Belt를 사용하는데, 허리를 조이고 상체를 부각시켜 늠름하고 강인한 군인의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Belt를 유행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1차 대전 이후 Belt의 남성다운 이미지와 편리함에 눈을 뜬 사람들은 조금씩 Belt를 착용하게 됩니다. 실제로 Sears 사의 1920년대 Catalog를 모아둔 책을 보니 젊은 층들은 Belt를 선호한다고 적혀 있더군요. 실제로 빈티지 사진들을 보더라도 Belt를 착용한 사진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일부 귀족 출신(명망있는 집안)이나 보수층은 Belt의 사용을 탐탁치 않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는지 1938년 LIFE지가 Belt와 Braces 중 어느 것을 선호하냐는 질문에 60%의 미국인들이 Belt를 선호한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Braces는 1940년대의 수트까지 종종 사용되다가 50년대부터는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사실 이 Braces라는 것은 현대에서는 패션의 일부분으로 여기지만, 실제 사용되던 과거에는 속옷과 같은 개념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켓이나 조끼, 가디건 등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이 올바른 착용이었으며, 이를 보이는 것은 수치스러운 행동이라고까지 여겼다고 하는군요. 사람들이 Braces에서 Belt로 옮겨나간 이유도 외투에 가려져 어차피 Belt를 찼는지 Braces를 했는지 안보이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아무래도 Braces보다는 Belt가 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Braces 착용을 상당히 좋아하지만, 장시간 착용하면 허리와 어깨가 아프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Braces를 착용하는 것은 요즘 것과는 다른 매력이 있고, 하이 웨이스트 바지의 실루엣을 살려주기 때문입니다.

 빅토리란 시대에 질좋은 Braces는 상류층 혹은 중상류층을 의미하는 어떤 상징적인 의미도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젊은 신사들은 실크타입의 Braces에 약혼녀가 자수를 수놓아 선물해줘야 진정한 약혼녀라고 생각했을 정도라고 하네요.




 Braces는 과거 종류가 다양했지만 굳이 분류를 하자면 3개의 종류가 있었다고 합니다.
Y자형, X자형, H자 형으로 나눕니다. 위의 자료는 1930년대 당시의 광고입니다. 등판 부위의 모양을 통해 분류한 것으로 손쉽게 구분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당시의 Braces를 연결하는 Button도 크게 3가지의 종류가 있었습니다.

첫번째로, 모두 안쪽에 다는 방법과




둘째, 뒷 부분의 Button 2개만 바깥으로 달고 나머지는 안쪽에 다는 방법,




마지막으로 Button 모두를 바깥에 다는 방법입니다.





현재 제가 소유 중인 Trousers는 1번과 3번 유형 밖에 존재하지 않네요. 2번째 방식의 Trousers도 언젠간 소유하고 싶습니다. 모두 매력있는 디테일이라고 생각합니다. 3번 타입에서는 뒤에 신치백이 있는 것도 볼 수 있으며, Button이 모두 밖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belt loop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2번 타입과 3번 타입은 간혹 Trousers의 뒷면 디테일이 Fish tail모양으로 된 것도 많습니다.(개인적으로 노리고 있는 디테일의 Trousers입니다.)


 간혹 Braces를 클립형으로 매는 분들이 있던데 패션 용도라면 상관이 없겠으나 옛 시절의 디테일을 추구하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한, 현대의 맞춤식 수트를 입는 분들을 보면 Braces button의 위치가 잘못된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특히 Trousers 앞 면) 과거의 책들을 보면 Braces button의 간격은 3~3.5인치라고 나와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Vintage suit들을 봐도 그 정도의 간격입니다. 이 간격은 Braces가 Trousers를 제대로 고정시켜주고 바지 본연의 모양새를 보여줄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짓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단순한 패션의 용도라면 상관이 없겠으나, 디테일에 민감하다거나 과거의 클래식한 의미로 Braces를 착용하는 분이라면 이 간격을 고려해 입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2014년 7월 28일 월요일

Cravate와 Tie


요즘은 Tie라고 부르지만 Tie의 시작은 Cravate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Cravate라는 명칭은 프랑스어에서 기인한 것으로, 그 시작은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프랑스를 주축으로 한 동맹군은 오스만제국에게 승리한 후 자축을 위해 최정예 병사를 파리에 파견합니다. 당시는 루이 14세의 통치기였습니다. 당시 루이 14세는 크로아티아인들이 화려한 스카프와 같은 천(당시는 린넨 혹은 실크로 만들어졌었다고 합니다.)으로 된 것을 목에 감고 있는 것을 보고 이에 매료됩니다. 이는 크로티아 용병의 부인이나 애인이 무사기원을 담아 목에 걸어준 것이라고 합니다. Cravate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시종은 Croate라고 대답합니다. 루이 14세는 이 Croate를 왕실기장으로 삼고 Croate를 착용한 친위대를 창설합니다. 이후 최고 권력자인 왕이 애용하자 귀족들 사이에 크게 유행하게 됩니다. 후에 크로아티아인을 의미하던 Croate에서 Cravate라는 명칭으로 바뀌게 됩니다.




 당시에는 풍성하게 맬수록 멋있다고 생각해 시간이 갈수록 두껍게 감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 Cravate는 태생적 신분을 상징하며, Cravate를 착용했다는 것은 모든 것을 대신해 줄 시종이 있으며 바삐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고 합니다. 허나 귀족의 상징이던 Cravate는 프랑스 혁명 이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사족을 달자면 반다나라던가 스카프를 홀더와 함께 착용하는 것은 이 Cravate에서 떨어져 나온 문화입니다.)




<Ascot Tie>





<Bow Tie>

 넥타이는 이런 Cravate가 영국으로 건너가 탄생하게 됩니다. 풍성함과 화려함의 상징이었던 Cravate를 변형하여 심플함과 가벼운 멋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남성들은 더 쉽고 편안하게 착용할 수 있는 Neckwear를 찾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Bow Tie와 Ascot이 탄생하게 되며, 특히 Ascot이라는 것은 현대의 Tie와 과거의 Cravate의 중간적 디자인을 띄며 어떻게 Cravate에서 현대의 Tie로 변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넥타이는 현재의 외형과 비슷한 모양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질은 형편없었습니다. 실크나 면으로 만든 홑띠 형식이여서 단단히 매지 않으면 풀리는 경우가 잦았으며, 풀기도 힘들어 애써 힘을 주어 풀게 되면 형체가 무너져 구겨지거나 찢기는 경우가 잦았다고 합니다.(실제로 제가 갖고 있던 20년대의 Tie는 3번 매고나니 찢어져 버렸습니다. 노후화 때문인줄 알았으나, 생각해보니 이런 점도 없지않아 있을 것 같습니다.) 


<특허번호 US2304935 A, Langsdof Jesse E>



 1920년 중반, 뉴욕의 타이 메이커 Jesse Langsdorf는 해결책을 찾아냅니다. 그들은 3개의 Segment로 나누어 봉합하고 직물을 대각선으로 재단하여 사용하여 탄력성을 높입니다. 이후로 구겨지거나 찢기는 일이 줄어들게 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Langsdorf가 고안한 방법으로 만들어진 타이를 착용하게 됩니다.




  이후 발전되어 온 1930년대의 타이는 현대의 것과는 다른 특징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길이가 현대의 것에 비해 상당히 짧습니다. 당시가 하이 웨이스트의 팬츠와 스타일이 유행했던만큼 Trousers의 길이에 맞춰 타이도 짧게 나왔던 것 같습니다. 타이의 폭은 대체로 현대와 다르게 좁으며 대검에 현대와 같은 루프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루프가 없어 타이바를 통해 대검과 소검을 모아줬습니다.



<배경이 별로여서 올리지 않으려다..소장 중인 타이입니다.>


 그 당시에는 편물을 짜는 기계도 안감 없이 한장의 천을 통해 전체적으로 얇고 가볍게 만들었습니다. 현대의 타이와는 다르게 심지도 존재하지 않으며 타이의 끝 부분에는 봉제를 하지 않아 하나로 연결되는 느낌으로 제작이 되어 Cravate의 영향이 많이 남아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뒷 부분의 마감도 현재와는 다른 차이를 보입니다. 현대의 것이 1자로 일정하게 봉합이 되어 있다면(slip stitch라는 것으로 개발은 20년대에 되었다고 합니다. 안감과 심지를 보호하기 위한 박음질 방법으로 알고 있으나, 대부분의 30~40년대 Tie에는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특허 때문에 그런 것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차후 알게 된다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30~40년대의 타이는 뒷 부분이 동그스름한 모형으로 마감이 되어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는 소검과 대검 모두 동일하며, 모형이 좌우대칭인 것에 비해 과거에는 비대칭인 타이가 많았습니다. (10~20년대의 타이는 뒷 부분의 마감이 되어있지 않고 현재의 타이 모양만 천에서 오려 사용된 것도 존재합니다.)

 아래는 30년대의 타이 광고입니다. 다양한 소재와 디자인이 사용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타이를 보면 사선 스트라이프 패턴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영국에서 시작된 패턴입니다. 연방국가에서 제휴나 연대, 유대감을 표현하기 위한 의미로 제작된 것으로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향하게 됩니다. 후에 이것을 차용, 미국의 Brooks Brothers는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향하는 사선 스트라이프 패턴을 사용하여 타이를 제작합니다.

 40년대까지는 넓지 않은 폭의 타이(4.5인치)가 사용되다가 1944년을 기점으로 51년까지는 넓은 폭의 타이(5인치)가 유행하게 됩니다. 이것은 아무래도 전쟁을 끝내고 쉬고 싶은 열망, 그리고 종전 이후에는 끝났다는 안도감과 평화가 반영된 Trend가 아닐까 생각됩니다.(미국에서는 Bold look이라고 표현을 하더군요.) 51년 이후부터는 수트의 트렌드가 변화합니다.(Esquire에서는 이를 Mister T-look이라고 잡지에서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특징으로는 Tapered suit와 슬림한 라펠, 그리고 좁은 챙의 모자를 썼었습니다. 당시 수트의 특징이나 시기를 고려할 때 Rockabilly의 시기에 입었던 수트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타이도 3인치로 슬림해집니다. 이러한 유행은 53년부터 60년대 중반까지 지속됩니다.(시대의 흐름을 보았을 때 Rockabilly의 시기와도 일치하네요.) 그리고 그 60년대 초반에는 1인치까지 슬림해지게 됩니다.(이건 이후의 문화인 모즈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애초에 30년대만 적으려 한 것인데 적다보니 20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 공부하게 되었네요. 다음에는 Braces(미국식 Suspenders)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2014년 7월 24일 목요일

Accessory

 1930's long-point collar shirt의 말미에서 언급했던 신사복의 Accessory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다양한 Accessory가 존재했지만 현재 대비, 사용하는 사람이 드문 Collar Bar, Tie bar, Cuff Links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Collar Bar


 현재는 사용하지 않지만, 1930~40년과 그 이전에는 멋쟁이라면 다들 하고 다니던 Accessory였습니다. 과거의 넥타이는 현대의 넥타이와 달리 원단 자체에 힘이 없고 넥타이 안에 심지가 존재하지 않아 풍성함을 유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사용하던 것이 Collar Bar입니다. 넥타이의 매듭을 치켜올려 풍성하게 보이게 하고 매듭이 풀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해줌과 동시에 Collar Bar 자체의 아름다움을 살린 장식적인 의미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Collar Bar에는 3가지의 종류가 있습니다.



 한쪽 끝을 분리하면 날카로운 바늘이 존재해 Collar에 직접 찔러 꽂은 후 다시 잠그는 Collar Bar(좌), 직접 찌르는 대신에 클립을 통해 Collar에 끼우는 Collar Clip(중), 현재 흔히들 말하는 Clip의 모양으로 눌르면 바늘과 같은 뾰족한 부분이 나오고 끼운 후 다시 씌워주면 되는 것을 Collar Pin이라고 부릅니다. 당시의 유명한 브랜드로는 SWANK, Krementz, NU-LOK을 꼽을 수 있으나 이 외에도 좋은 브랜드들이 다수 존재했다고 합니다. 현재 좌측의 Collar Bar가 제가 사용 중인 것인데 매번 꽂고 빼는 것이 제법 불편하여 차후에는 Collar Clip을 구매하려 생각 중입니다.


 착용한 이미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Tie Bar





 현재의 넥타이에는 루프라고 하여 대검의 뒷부분에 소검과 대검을 한데 묶어주는 것이 존재하지만 이 시대에는 없었습니다. (언제부터 루프가 존재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현재 보유 중인 40년대 타이에도 없는 것을 보면 40년대 이후인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차후 정확한 정보를 알게 되면 수정하여 적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검과 소검을 묶어주는 용도로 Tie Bar가 사용됩니다. Collar Bar와 마찬가지로 실용적인 면과 장식적인 면을 두루 갖춘 Accessory였습니다. Tie Bar는 단순히 대검과 소검을 묶어주는 디자인도 존재하지만, Tie Bar를 연결하는 가는 줄의 chain도 붙어있는 등의 Accessory 성향이 강한 제품들도 존재하였습니다.






  당시의 재미있는 Tie Bar입니다. 가운데를 비워 칼이나 화살이 타이에 꽂힌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당시의 Tie Bar를 보면 개나 말, 그리고 가문의 문장 등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당시의 아트데코적 성향이 들어간 디자인이 보이는 등 Accessory를 통해서도 당시의 문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Cuff Links





 마지막으로 현대에서 그나마 쉽게 접할 수 있는 Cuff Links입니다. 셔츠의 Cuff를 고정시켜 소매를 우아하게 만들어주던 Accessory입니다. 얇은 사슬로 이어지거나, 쇠를 구부리는 스타일, 스냅 버튼 식의 다양한 형태가 있었습니다. 소재 또한 황동, 금, 은 등의 다양한 소재와 디자인이 사용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빈티지 잡지나 카달로그를 보면 Accessory 광고를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Accessory는 품목별 판매도 되었지만 SET구성을 통해 Collar bar, Tie bar, Cuff Links가 동시에 판매되는 것을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SWANK, Krementz, NU-LOK, Hickok 같은 제조 업체가 유명했다고 합니다.



2014년 7월 23일 수요일

Detachable collar

 1920년대까지 신사복에서 사용된 Detachable collar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1827년, 뉴욕의 Troy에 살던 Hannah Montague라는 부인이 남편의 셔츠를 세탁하려는데 셔츠의 목 언저리만 더럽자 collar만 잘라내어 빨고 다시 꿰맵니다. 이것을 본 The Rev. Ebenezar Brown이라는 비즈니스맨은 탈부착이 가능한 Colloar를 상품화시키게 되고 Detachable collar가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탈부착 시키는 것은 풀을 먹임으로써 모양을 견고하게 할 수 있고 특정 부위를 강조할 수 있어 후에 셔츠의 다양한 부분(collar, 가슴의 앞판, cuffs)이 탈부착 가능하도록 변형됩니다. 셔츠의 편안함 대신에 특정 부위를 강조하는 이러한 시도는 빅토리안 시대 안에서 유행하고 사라지다가 1930년대에 들어서며 신사복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디테일이 됩니다.





  이 Detachable collar를 셔츠에 고정하기 위한 악세서리를 Stud라고 하는데 한쌍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길고 다른 하나는 짧은데 짧은 것이 목 뒷부분, 긴 것이 현재 셔츠의 첫번째 단추에 해당되는 곳에 위치하여 셔츠와 collar를 고정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현대와는 다르게 가장 많이 사용되던 칼라는 Round edge club collar였습니다. 허나 1923년 이후부터는 현재와 같은 끝이 뾰족한 Pointed collar가 유행하게 됩니다. collar는 현대보다 전반적으로 더 컸고 끝이 뾰족한 형태도 있었으며(long-point collar) 이 때부터 부드러운 collar가 등장하여 버튼다운 셔츠에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 시기는 클래식의 정석이라고도 일컫는 윈저공작(1894.06.23 ~ 1972.05.28)이 활동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윈저노트로 넥타이를 매기 위해서는 과거 collar가 모아져 있는 것과는 달리 벌어질 수록 좋았고 이는 스프레드 칼라를 만들어내고 라운드칼라도 마찬가지로 끝이 벌어진 타입이 등장하게 됩니다. 

20년대 중반부터는 셔츠의 cuffs가 분리가 되는 것이 아닌 셔츠와 같은 부드러운 소재로 부착되어 나오고 collar 또한 부착된 제품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30년대에 들어서서는 Detachable collar는 노동자들을 위한 셔츠라는 인식이 되어 신사복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됩니다.


2014년 7월 22일 화요일

Long-point collar shirt

 다른 시대와 구분대는 특징을 가진 1930년대의 셔츠를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1900년대 초반의 셔츠는 탈부착 되도록 만들어진 칼라(Detachable collar)를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Detachable collar와 관련된 자세한 1920년대의 셔츠 이야기는 다음에 적겠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탈부착보다는 하나로 되어있는 지금의 셔츠형태를 많이 입기 시작합니다.



 1930년대를 대표하는 Long-point collar shirt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것과 같이 collar가 뾰족하고 긴 셔츠입니다. 이 당시에도 즐겨입던 와이드 스프레드 칼라 셔츠는 현대에도 자주 볼 수 있으나 Long-point collar shirt는 보기 힘든 디테일입니다. 이 셔츠는 영화 '그랜드 호텔'의 존 베리모어가 좋아한 것으로 유명하여 '베리모어 칼라 셔츠'라고도 부릅니다. 옛날 흑백 영화의 배우들을 잘 보면 이 셔츠를 애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당시에는 팔목은 커프스(더블 혹은 싱글)가 보통이었고, 셔츠의 가슴과 팔통은 넓어 편안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줬습니다. 등판의 다트에는 양쪽 측면에 얇은 주름을 넣어 우아한 멋을 살렸습니다.(글로만 적는 점 양해바랍니다. 잘 복각된 레플리카를 가지고 있으나, 블로그에서는 가능한 원판만 올리고 싶어 첨부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Collar에 collar bar를 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당시의 멋쟁이 남성들의 필수품이었다고 합니다. 악세사리에 대해서는 추후에 따로 포스팅 하겠습니다.

2014년 7월 21일 월요일

Oxford Buggs




 1930년대, 신사 패션의 아이템 중 당시의 독특한 Item으로는 Oxford Buggs라는 Trousers가 있습니다. 



그 기원은 1920년대 후반 영국의 명문대학 옥스포드 대학에서 유래합니다. 당시 영국의 젊은 층에는 Nickers라는 바지가 대유행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본 적이 없지만 해외에서는 클래식하고 전통적인 Item의 대명사로 Tweed Run과 같은 해외의 축제를 보면 멋쟁이 신사들이 착용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에 대학교수들에게는 이 Nickers라는 것이 좋게 보이지 않았는지 학생들이 교실에서 입는 것을 금지하였습니다. 그래도 계속 Nickers가 입고 싶었던 학생들은 묘안을 생각해 냅니다. 이 Nickers라는 것을 가리기 위해 통이 넓은 바지를 위에 겹쳐 입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Oxford Buggs라는 Trousers가 탄생하게 됩니다.

 
(당시의 Oxford Buggs를 입은 옥스포드 대학생들)

 
(Nickers를 입은 사람들)

 
 


 처음엔 Nickers를 입기 위한 임시방편이었으나 Oxford Buggs는 내가 옷을 좀 입는다는 증표임과 동시에 학생들 사이에서 묘한 동료의식을 싹틔웠고, 이는 명문대 부유층 학생들을 선망하는 대중들 사이에 퍼져 하나의 시대적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또 다른 일설로는 옥스포드 대학의 보트부에 있던 부원이 레이스 후 짧은 바지 위에 체온을 보호하기 위해 입던 타올로 만들어진 통이 넓은 바지에 착안해 Oxford Buggs가 탄생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보트부원 사이에 퍼지고 더 나아가 시대를 주름잡는 Trend로 자리매김했다는 설입니다.( 하지만 Nickers를 감추기 위해 입기 시작했다는 설이 정설로 여겨지는 듯 합니다.)


 그리고 이 당시에 영국에 방문하여 이러한 것을 본 아이비리그 학생들에 의해 미국에도 전파되어 양 나라 모두에서 유행을 하게 됩니다.

 이 당시에는 남성 패션에서 Trousers만을 독립적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나, 이 Oxford Buggs를 통해 처음으로 Trousers 자체가 주목받기 시작합니다.